[이글루스 렛츠 리뷰] 아카쿠치바 전설 책/만화, 소설, 잡지, 그외

아카쿠치바 전설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나의 점수 : ★★★★





12000원짜리 하드커버, 역자후기 제외하고 490페이지의 장편소설.
제60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2007년 나오키상, 요시카와에이지문학신인상 후보작.


p 214
복도를 걸어가며 나미다는 여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열여섯 소년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허무하고 창백한 얼굴로.
"게마리, 너 생각해본 적 있니? 이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
"그래. 너한테는 너무 이르겠구나. 이제 막 사랑하는 인생을 시작했으니."
오빠가 보기보다 엉뚱한 데가 있다고 게마리는 생각했다. 이야기 나누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나미다가 걸음을 멈췄다.
"사랑을 하면 미래를 가질 수 없게 돼.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p 270
"가방, 청춘이 언제 끝나는지 이제 알았어."
"언젠데?"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을 당할 때야."


※ 나미다도 가방도 사람 이름입니다.....;






일본 한 촌구석에 마을이 있는데, 저택 두 개가 있었습니다.
윗저택은 오래오래 제철을 해온 명문 빨간 저택이고 아랫저택은 전쟁을 타고 부자가 된 졸부 까만 저택.
이 빨간 저택에 사는 할머니 만요万葉와 엄마 게마리의 이야기를 손녀 도코가 이야기하는 형식..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추리가 필요하냐, 싶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엄청 긴 지문 뒤에 짧은 문제가 딸랑 떨어져서 어랏? 하면서 앞을 다시 훑어봐야할 것 같은 내용이니까요. 3부가 살인자니까 말이지만 살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부분은 어라라라랏? 이었네요. 전 논리에 약해서 굉장히 놀랐지만 요즘의 예전과는 다른 방식의 추리소설에 익숙하신 분들에겐 금방 들통날 트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지만 흡입력이 대단합니다. 오늘 이 책 들고 다니면서 1부는 지하철에서 2부는 병원이랑 약국 대기실에서 3부는 집에 가기 싫어서 그 추운 지하철 역에서 다 읽었네요...; 또한 빨간색이 주 이미지로 잡혀서 굉장히 생생한 컬러감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단풍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눈앞에서 단풍이 펼쳐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빨간색 이외의 다른 색- 검은색이나 버진핑크에 대한 것도 생생합니다. 감각적이고, 상징적인 색의 표현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주고 싶어요....ㅠ_ㅠ

주연인 세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도 생생합니다. 늘 이상한 이름만 붙이는 만요의 시엄마 다쓰-라던가, 만요의 다른 아이들.... 이름이 있는 사람들은 다 역할이 있습니다. 그 한사람한사람이 더도 덜도 없이 자기자리에서 움직입니다. 나이스.
인물의 이야기에 일본의 전후 60년이 잘 녹아 있습니다. 뭐랄까 졸지에 일본근대사공부.... ? 환경오염으로 인한 공해병이나 유류파동, 버블경제, 일견 무기력해보이는 현재의 아이들까지 참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이매진 노래 부르는 건 진짜 만세였음. 아 이 시대상 표현 어쩌면 좋누....ㅠ_ㅠ 도코의 ';하고 싶은 게 없어요'하는 모습과 연애질하는 모습은 딱 제 모습.. 제 마음.. 요즘 아이들 그대로- 라는 느낌으로 공감되었습니다. 그치만 '뷰티풀 월드'는 조금 엇나갔다, 랄까.. 그런 느낌도 있었어요. 팍 와닿진 않았음.

진짜 막나가게 매력적인건 그 엄마지만요. 엄마, 게마리는 불량소녀니까요. 간단히..... 후르츠 바스켓에 나오는 쿄코씨의 갱생전 모습. 신사동맹크로스의 하이네 여깡시절 모습. 뭐 얘들은 잽도 안됩니다. 우리 게마리! 게마리와 그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상당히 백합적이긴 한데.... 백합보단 우정이죠. ....백합이라면 차라리 반쯤 미친 듯한 모모요일까나.

개인적으로는 만요언니가 좋았습니다. 천상계로 생각하던 붉은 저택에 시집간 소녀의 파란만장스토리..랄까.. 아 이러면 실제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지만요.. 여튼 첫경험이고 환시고 애 낳는거며 아들이며 딸내미며 시어머니에 남편까지 제 취향에 퍼펙트. 읽으면서 진짜 사쿠라바 카즈키란 작가를 추천해주신 분에게 엄청 감사했다죠...이 책이 일본에서 나오기도 전에 작가를 추천받았습니다만 고식은 제 취향이 아닌데다가 하도 백합이라느니 소녀풍이라느니 작풍이 똑같다느니 해서 걍 읽지 말자 이러고 있습니다.

이거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사쿠라바 카즈키 언니(....)의 책 감상중에 나오는 이야기
작풍이 늘 똑같다. 늘 여자애들 얘기만 쓴다. 백합일뿐이다! 라는 것 말입니다만.
이 언니 책 딱 두 권 읽어봤으니 앞의 두개는 모르겠고(고식과는 다릅니다, 달라요. 그치만 그건 좀 다르고;)
세번째는 부정할 마음이 들었습니다.
풍이 똑같다거나 백합이니 어쩌니 하면서 고삐걸어놓고 안 읽기는 아까운 작가입니다.
노말한 연애이야기도 제법 잘 써서 안심했어요... 최근은 노말이 좋아요... 근데 이 언니 쓰려면 BL도 멋들어지게 쓸 수 있을 거야....ㅠ_ㅠ 를 떠나서,
사쿠라바 카즈키는 소녀의 이야기를 주로 쓰기는 하지만, 그것이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얼마든지 다른 소재나 스토리에 녹아드는 매력과 문장과 전개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태까지의 평 들은거 잊으시고, 책을 잡아 보시면 좋겠네요. 사실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현대소녀물이라서 조금 식상한 감이 있었지만 과거의 이야기에 조금 환상풍인데다가 전통불량소녀(여깡)의 생활모습과 만화가로서의 분투 쪽이 있는 아카쿠치바 전설은 진짜 최고!!! 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심각한 사회문제들도 줄줄 나오고,... 흡입력 심각하게 만땅. 이 흡입력 때문에 개인적으로 별 네개반정도 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엄청난 흡입력은 완전 공간과 소음의 차단의 효과를 발휘한다니까요...ㅠ_ㅠ


사실 수많은 등장인물과 얽히고 엮인 스토리 중에서 개인적인 베스트는... 앞에 언급된 사람들이 아니랍니다. 만요 언니랑 게마리 좋아하긴 하지만 젤 마음에 든 플롯은 나미다 군의 스토리.............. 진짜 울컥 하고 울뻔 했던 건, 미도리의 오라버니와 관련된 만요와 미도리 이야기. 아 진짜... 소녀심이 자극되는 건 이쪽이에요. 이 망할 전쟁 꽃미남을 죽이고 있어! 호모 포비아 같은 사상은 이 세상에 필요없어! 같은 BL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읽어도 충분할 플롯....(왠지 사실과는 무관하지만.....) 너무 자세하게 쓰면 스포일러라서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게 아쉽네요.

그리고 오역 있습니다... 번역자님... p207의 야로사고(夜露死苦) 하신 이거요...요로시쿠예요... Kagrra,의 모 군이 이 말 쓰곤 해서 아는 겁니다만; 瞳子가 도코가 되고 蝶子가 초코가 되는 현실이야 한국 번역 전반적인 문제니 어쩔수 없습니다만... 아니 무엇보다 카즈키가 가즈키...; NT노벨에선 사쿠라바 카즈키라고 부르고 노블마인에서는 사쿠라바 가즈키라고 하는 이 슬픈 현실....(늘 이런 식으로 작가 이름이 꼬이는 현상을 슬퍼하는건 제가 도서관학과 졸업생이기 때문입니다 <<)

이래저래 길어졌습니다만, 그것도 참 재미없는 리뷰가 길어졌네요(땀)
책은 재미있습니다. 좀 비쌉니다만; 도서관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을 듯하니 빌려라도 보시는 걸 추천. 진짜 별 네개의 가치가 있는 글이라는 것으로, 여기서 줄입니다.

ps- 티쳐스 펫이란 단어는 상당히 쇼크. 우오오오오... 그리고 생각해보니 시작은 진짜 신화잖아... 오로치라뇨(....)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kehre.egloos.com/tb/3542367 [도움말]

핑백

덧글

  • Rosa 2007/12/22 23:39 # 답글

    글 쓴걸 보니 진짜 재미 있었나봐요..신났어...
  • 체리우드 2007/12/23 01:19 # 답글

    고식작가네요. 재미있을거 같은데 도서관을 노릴까 아니면 그냥 살까 고민이 되는군요.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면 도서관으로 가겠지만...^^;;
  • 시오、 2007/12/23 10:23 # 답글

    Rosa 님 // 네, 재밌어요. 요즘은 아줌마들이랑 할머니들 얘기가 더 재밌는거 같기도 하구요. 오랫만에 이렇게 재밌는걸 읽었어요.

    체리우드 님 // 고식작가..인데 고식은 진짜 버릴려고 챙겨놨는데 이거 읽고 나니 내버리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사쿠라바 카즈키 언니에게 미안해서요... ^^;; 전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책은 거의 안 사게 되던데.. 문제는 책이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 가기 귀찮거나 갈 시간이 없거나 도서관에 가도 그 책이 대출중이라 없는 경우....
    참고로 정말 재밌습니다!!!!! 엉엉.

  • 검은월광 2007/12/23 12:33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고식을 그럭저럭 재밌게 읽은 저로서는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 소하 2007/12/23 19:01 # 답글

    이쪽 하드커버 소설들에 대한 평을 듣고 고식을 구입했었습니다만.......결과는(...)
    살 사람도 딱히 나타나지 않아서 중고 서점에 싸게 팔아버릴 생각입니다 고식은.
  • 시오、 2007/12/23 21:33 # 답글

    검은월광 님 // 음.. 고식은 확실히 가볍더군요. 그리고 이쪽은 진짜 흡입력 있답니다. 도서관에 가셔서라도 읽어보시길 빌어요!

    소하 님 // 네 아마 살 사람 없을거라 사료됩니다.. 전 버릴까 하다가 아카쿠치바 전설을 봐서 고식을 용서해줄까 합니다....;ㅅ;
  • 르-미르 2008/01/10 15:09 # 답글

    베스트리뷰 당첨되셨더군요 ^^ 축하드립니다.

    전 학교 도서관에 신청하려다가, 소설책은 안된다길래 ㅜㅜ
    주소지가 현재 살고있는 곳이 아니라 시립도서관 이용도 못하더군요 Orz
  • 시오、 2008/01/12 20:54 # 답글

    르-미르 님 // .... 앗 알려주셔서 베스트리뷰 당첨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르-미르 님 다니시는 학교도서관은 진짜 빡빡하네요. 가까이 살면 제가 빌려드릴텐데 거리도 머니.... 시립도서관에서 그냥 읽긴 좀 두꺼우니까... 으음 하다못해 시립 도서관이라도 좀 덜 꼬장꼬장하면 좋을텐데 말이에요...ㅠ_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